장이머우가 펼친 물 위의 춤판 … 국악인 상상력에 불 댕기다 (중앙일보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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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가 펼친 물 위의 춤판 … 국악인 상상력에 불 댕기다 (중앙일보0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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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인상서호’의 한 장면. 중국 전통 설화인 ‘백사전’을 토대로 현대적 무대 장치와 음악을 덧입혔다. 호수면 자체를 무대로 삼아 배우들이 물 위를 걸어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알짜배기 상해여행’ 제공])

호수에선 마음이 가라앉는다. 바다에도 물은 있지만, 호수의 물과는 다르다. 바다가 모험가의 물이라면 호수는 사색가의 물이다. 사색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치자면 중국 항저우의 서호(西湖)만한 호수가 또 있을까 싶다. 천년 전 중국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배를 띄우고 시를 짓던 곳이다. 둘레 15㎞의 잔잔한 호수를 따라 걷다보면 누구라도 시심(詩心)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서호가 무수한 전설과 설화를 품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중국인들은 수천년에 걸쳐 이 대책 없이 드넓은 호수에서 시를 짓고 이야기를 지었다.

우리 전통 예술가라면 어떨까. 천년의 음악을 이어가고 있는 국악인들이 천년의 예술혼을 품은 중국 서호를 거닌다면. 게다가 요사이 서호는 중국의 명장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수상가무쇼 ‘인상서호(印象西湖)’로 예술혼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서호에서 영감 떠올린 명인들=12일 밤 중국 항저우에선 우리 국악 명인들이 서호의 오랜 예술혼과 교감하는 시간이 펼쳐졌다. 크라운·해태 그룹이 우리 국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명인10명을 불러 앉혔다. 대금·가야금·해금·장구 등을 다루던 명인들의 눈길이 ‘인상서호’의 무대인 서호에 바투 맞춰졌다.

‘인상서호’는 서호의 호수면을 무대로 삼은 작품이다. 밤에만 이뤄지는 공연에선 화려한 조명이 호수를 낯선 공간으로 바꾼다. 호수면을 10㎝ 정도로 맞춘 무대에서 배우들이 첨벙첨벙 물위를 걸어다니며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사람도 배도 집도 모두 물 위를 미끄러지듯 오간다.

공연은 서호가 무대인 중국 설화 ‘백사전(白蛇傳)’을 토대로 했다. ‘백사전’은 인간이 되고픈 흰 뱀인 백소정과 서생 허선이 서호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세속의 벽에 가로 막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항저우의 서호를 찾은 명인들. 왼쪽부터 국립국악원 이흥구(무용), 크라운베이커리 육명희 대표이사, 크라운·해태 그룹 윤영달 회장,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박용호(대금), 이화여대 홍종진(대금), 한양대 양연섭(가야금), 김종국 화백(한국화), 한양대 이상규(작곡), 한예종 양성옥(무용), 한예종 정수년(해금), 중요무형문화재 이춘희(경기민요), 용인대 김정수(장구) 교수. [항저우=정강현 기자])

만남·사랑·이별·추억·인상 등 5막으로 이뤄진 공연은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배우들의 연기와 현대적으로 해석된 중국 음악 등이 어우러져 낭만적 세계를 펼쳐낸다. 특히 죽어서 백학이 된 여인이 날아가는 모습에선 관람중이던 명인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가야금 명인인 양연섭 한양대 국악과 교수는 “애잔한 이야기와 선율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며 감동을 전했다.

명인들은 공연 이후에도 서호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인상서호’에 대한 촌평과 국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명인들은 “전통 문화를 끊임 없이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노력을 본받아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정수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해금)는 “자연 환경인 호수를 무대로 바꾼 발상이 놀랍다”며 “우리 전통 음악도 발상을 조금만 바꾼다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한양대 교수(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이수자)는 “무대 효과나 규모 면에서 상식을 뒤집은 공연이었다”면서도 “중국 전통 악기 대신 신디사이저 등 전자 악기를 사용한 건 아쉬운 점”이라고 평했다.

◆로봇 활용한 전통 음악극=신개념 국악 공연에 대한 전망도 나왔다. 박용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대금)는 “우리 전통 음악으로도 충분히 스펙타클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다”며 “다만 국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락음(樂音) 국악단’을 운영하고 있는 크라운·해태 그룹의 윤영달 회장은 “전통 설화인 ‘견우직녀 ’이야기에 국악과 로봇 기술이 접목된 공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항저우(중국)=정강현 기자

항저우의 서호를 찾은 명인들. 왼쪽부터 국립국악원 이흥구(무용), 크라운베이커리 육명희 대표이사, 크라운·해태 그룹 윤영달 회장,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박용호(대금), 이화여대 홍종진(대금), 한양대 양연섭(가야금), 김종국 화백(한국화), 한양대 이상규(작곡), 한예종 양성옥(무용), 한예종 정수년(해금), 중요무형문화재 이춘희(경기민요), 용인대 김정수(장구) 교수. 항저우=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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